EPILOGUE
오 년 전, 그날

퇴사 뒤에도 협력업체용 촬영 일정 링크 하나는 막히지 않았다. 부사심은 그 화면에서 설악산 촬영 날짜와 차량 번호를 알아냈다. 촬영 날에는 멀찍이 떨어져 유별나의 차량을 따라갔다.
설악산 주차장에 촬영팀 승합차와 장비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부사심은 자기 차 뒷좌석으로 몸을 낮췄다. 긴 코트와 구두를 벗고 등산복과 방한 바지로 갈아입었다. 값싼 등산화의 끊긴 마름모 무늬를 손으로 한 번 쓸었다. 칼은 수건으로 감싸 배낭 안쪽에 넣었고, 내려온 뒤 갈아입을 평상복은 트렁크에 남겼다.
촬영팀은 반사판과 삼각대, 제품 상자를 내리느라 늦어졌다. 부사심은 모자를 눌러쓰고 먼저 등산로로 들어갔다. 짐은 가벼웠고 길도 미리 익혀 두었다.
일행보다 먼저 별장에 도착했을 때 나규칙은 장작을 옮긴 뒤 옆문을 잠그지 않은 채 원고 앞으로 돌아가 있었다. 부사심은 소리 없이 들어가 창고의 장비 덮개 뒤에 숨었다. 누구도 별장 안에 먼저 들어와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촬영이 끝나고 일행이 흩어지자 부사심은 창고 문을 열었다. 장비 상자 위의 카메라가 켜져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렌즈 정면에서는 벗어나 있었지만, 창고 앞을 지나는 어깨와 젖은 등산화가 벽에 세워 둔 은색 반사판에 잠깐 비쳤다.
젖은 등산화가 복도 바닥에 눈을 찍었다. 난로의 열이 눈을 녹여 얕은 물자국으로 만들었다. 촬영용 ‘눈꽃’ 상자를 스친 외투 소매에는 흰 펄 가루가 묻었다.
복도 끝 방에서 유별나는 진이경과 서이로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부사심이 들어오자 유별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여길 어떻게 왔어?」
「대표님 얼굴은 치료가 끝났네요. 제 이름은 아직 검색창에 남아 있어요.」
「그건 네가 돈을 받고 들여온 물건 때문이야. 산까지 따라와서 피해자 행세하지 마.」
「판매 날짜를 당긴 사람은 대표님입니다. 전국에 뿌리라고 한 사람도 대표님이고요.」
「그래서 내 얼굴이 망가진 게 내 잘못이야?」
「제 인생이 망가진 건 전부 제 잘못입니까?」
유별나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지금 나가. 안 나가면 경찰 부를 거야.」
부사심은 배낭에서 칼을 꺼냈다. 유별나는 뒤로 물러났지만 피하지 못했다. 칼날 끝에서 손톱보다 작은 금속 조각이 떨어졌다.
부사심은 칼을 들고 옆문으로 돌아갔다. 문이 닫힌 뒤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고 눈은 바깥 발자국을 빠르게 덮었다. 아무도 그녀가 들어오거나 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칼을 산속 깊이 버리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차에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이곳을 떠나면 완벽한 범죄가 될 터였다.
그러나 부사심은 눈보라 속에서 등산로를 벗어났다. 발밑의 눈이 꺼지며 몸이 깊은 눈구덩이로 떨어졌다. 기어오를수록 가장자리가 무너졌다. 차와 평상복은 주차장에 남아 있었지만 부사심은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자연을 만만하게 본 것이 그녀의 마지막 실수였다.